롤의 스토리가 점점 완벽한 유니버스, 치밀하게 기획된 세계로 바뀌어가는 걸 보고 있자면 참 달콤 씁쓸하다.
덩치를 키우는 스토리텔링 계획들이 너무 스케일이 커져서 새로운 상상력이 들어갈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경우에, 오히려 캐릭터 간의 감성적 접근이 일종의 팬덤식 소비로서 상대적으로 질 낮게 평가되기도 하고. -상상력이란 게 보통 무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추리의 타래인데- 거대한 서사시의 이중 삼중의 치밀한 떡밥의 설계는 오히려 그런 가능성의 내연 확장을 차단해 버린다. 그래서 블리자드처럼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스토리 기반의 팬 만화가 많이 줄어드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식이 거의 없었던 이야기의 공식화'가, 새로운 출발과 더불어서 중도의 안내 없이, 필요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바뀌어 나가는 설정들을 보면 살짝 허탈해진다. 심지어 바루스처럼 [믿음을 잃고 타락한 복수자 - 믿음을 가졌지만 위험에 빠져 타락한 자를 만나 복수를 꿈꾸다가 그래도 믿음을 유지하는 혼란에 빠진 하여튼 혼란한 자]같이, 캐릭터가 가진 근간의 키워드를 파괴해 버리는 경우에 생기는 파급력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슈퍼맨이 소비에트에 떨어져 공산당원이 될 수도 있고 아이언맨이 좀비가 될 수는 있어도 그건 아예 다른 세계관을 전제하는 것이지 공식을 뒤틀어서 새로운 공식을 선언하는 케이스가 아니었다. 반대로 이건 하루 사이에 예고 없이 바뀌는 공식이다.
먼저 뺨을 때려놓고 맞은 팬덤의 관용이 부족함을 탓하는 건 경우가 아니다. 방향성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를 탓해야 한다.
차라리 프롬 소프트웨어처럼 스토리의 깔끔한 해설과 결론을 짓지 않는 전개를 이어갔으면 오히려 팬덤 입장에서는 편하기는 했겠지만.
배신의 감정도 아니고 서운한 것도 아닌, 마치 원래부터 즐겁게 왕래하고 지내던 친구가 어느덧 출세하더니 이제 다른 물에서 놀기 시작하면서 점점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듯한 거리감이 생기는 기분이 많이 든다 요즘은.
예전같은 롤만화들이 더이상 안나오는것도 비슷한 이유로 느껴지네요.. 롤만화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도 좋은데 더이상 그렇다할 롤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