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웹툰일을 시작하기 이전 까지, 3년 동안 다녔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개봉했습니다.
여러분은 (거의) 모르실 EBS에서 방영한 TV애니메이션 '바오밥섬의 파오파오'를 제작한 스튜디오 입니다. -저건 제가 다닐 때 만들었죠. 인원이 적다보니 스토리보드, 컨셉아트, 디자인, 2D애니메이션,이펙트 등등 엄청나게 많이 참여했습니다.-
이전에도 애니메이션쪽은 오지 마라, 사람 다닐만한 곳 못 된다고 여러차례 이야기한 적은 있었죠. 그만큼 업계 사정이 엄청나게 열악한 곳이고, 복지 다 누리면서 다닐 정도로 재정이 좋거나 많은 투자를 받는 곳도 아닙니다.
이번 작품도 공공기관 등의 지원 이외에 기업 쪽의 투자를 못 받고 거의 자력으로 다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아시다시피 장편 애니메이션 투자 수익률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 맨땅에 헤딩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국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분 들이 희생해 가면서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라 봐야 합니다.
슬슬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이야기는 아주 밝고 희망차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시작부터 주인공은 불행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상실을 경험하고, 소중한 사람과는 마음이 소원해집니다.
이걸 회복하는 과정이 너무나 보는 사람에게 아프거나 지루하게 진행된다면 가족용 애니메이션이 아니겠죠.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 수아는 모험을 떠나며 자신이 그동안 외면하던 마음 속의 어둠을 끌어안으면서 천천히 성장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특이한 부분은 '어둠'이라는 요소인데, 우리가 그동안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온 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뒤틀어냅니다.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 어둠은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함께 어우러져 가치를 발견 하도록 도와준다는 새로운 의미를 여러형태의 메타포(은유)로서 전달합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빛나는 것들의 가치를 어둠을 통해서 더욱 잘 보이도록 도와주는 거죠.
가족영화이면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점은 영상미도 그렇지만, 작품 내에 이런 종류의 메타포가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우주의 플루토 행성, 다른 의미로는 명계의 왕. 수아는 우주를 여행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두가지 플롯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눈에는 용감한 주인공이 여러 차원에서 겪는 환상적인 모험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마음에 깊은 어둠을 품게 된 어린 주인공이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서 스스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가족을 이해하는 치유의 이야기로 보여지는 거죠.
중간중간에 맥이 끊기지 않도록 첨가해주는 특유의 개그센스도 아이들을 울고(?) 웃게 해줍니다.
사실 시사회를 보기 전에, 극장을 나오는 엄마들이 그렇게 울면서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 신파극이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까 그 완급조절을 상당히 잘 해줘서 다행이었죠.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대단원에서 주인공이 내뱉는 말들인데 '가족영화'이기 때문에 표면만 훑고 지나가는 그런 형식적인 대사들이 아니라, 실제 감정들이 가감없이 묻어난다고 생각되는 강렬한 대사들이 있어요.
그게 오히려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이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극장에서는 좋은 볼거리, 극장을 나와서는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좋은 스토리텔링.
원론에 가깝지만 이 두가지를 동시에 잘 하기가 참 힘듭니다. 한 때 밑에서 배웠던 교수님이자 감독님, 그리고 그 회사에 다녔던 사람으로서 뿌듯한 생각이 드는군요(코쓱)
앞으로도 국내 애니메이션이 뻗을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고, 투자업계는 끌어 당겨주고, 또 국민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벗고 많이 밀어줄 수 있도록…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토양이 비옥해야 좋은 먹거리가 많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오 유튜브 광고에서도 보이던데 개봉했구나
시험도 끝났는데 친구 강제로 끌고가서 저거나 보면되겠다